조혈모세포 자가이식치료로 혈액암 환자 건강 되찾아
난치성 조혈모세포질환 치료와 제주 3년
난치성 조혈모세포질환이란 혈액세포들을 만들어내는 뼈 속 골수의 씨앗세포인 조혈모세포에 병이 생겨서 치료가 잘되지 않는 몇 가지의 질환들이다. 대표적으로 급성골수성백혈병,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골수이형성증이 여기에 해당된다. 피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여러 가지 세포들, 예를 들어서 붉은 핏톨(적혈구), 흰 핏톨(백혈구), 혈소판이 떠다닌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숫자의 조혈모세포들을 갖고 태어나며, 이들의 수가 평생토록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혈액세포들을 매일 만들어 낸다.
재생불량성빈혈은 조혈모세포들의 전체 숫자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갑자기 줄어든 병이다. 이러한 환자는 혈액세포들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증상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적혈구가 부족해서 빈혈증상들(창백, 호흡곤란, 무기력)이 그리고 백혈구의 부족으로 세균감염에 의한 고열이 발생한다. 여기에 혈소판의 부족은 다치지 않았는데도 멍이 잘 들고, 코피나 잇몸에서 피가 저절로 나며, 젊은 여성은 월경양이 갑자기 늘어나는 증상들을 일으킨다.
급성백혈병은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들 가운데 하나가 몇 가지 유전자들의 연속적인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암세포인 백혈병세포로 바뀐 혈액암이다. 백혈병세포는 정상세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할 뿐 만 아니라 죽어 없어지지도 않고 그 수가 무한정으로 늘어나며 주변의 건강한 조직들로 파고들어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골수에 백혈병세포들이 점점 많아지면 정상 조혈모세포들이 혈액세포들을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재생불량성빈혈과 똑같은 증상들을 일으킨다. 골수에 가득 찬 백혈병세포들이 피로 넘쳐 나와서 온몸을 돌아다니게 된다. 백혈병환자의 피 속에 백혈구들이 많아지지만 대부분이 백혈병세포들이다. 피 속의 백혈병세포들은 잇몸, 간, 비장, 림프샘, 심지어 피부와 뇌에도 자리를 잡아 잇몸이 붓고, 간과 비장은 물론 온몸에 있는 림프선들이 커지기도 한다.
골수이형성증은 백혈병과 마찬가지로 조혈모세포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병으로 아직 백혈병이 되기 전단계의 병이면서 동시에 병든 조혈모세포들이 혈액세포들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여 재생불량성빈혈의 증세도 갖고 있다. 그래서 초기에는 혈액세포들이 부족한 증상들만 보이고 있다가 일부의 환자들에서 갑자기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변화한다.
난치성 조혈모세포질환들은 병의 기원이 조혈모세포에 있기 때문에 병을 완전히 고치기 위해서 환자의 병든 조혈모세포들을 일단 모두 없애 버린 다음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기증받은 새로운 조혈모세포들로 교체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러할지라도 이식의 합병증과 후유증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이식 그 자체에 의한 위험보다 환자의 지금 병세가 훨씬 더 위험해야만 이식을 고려한다. 이와 더불어 이식을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환자의 나이가 젊고 건강해야 하며, 환자와 기증자 사이에 이식이 가능한지를 판단하게 해주는 유전자들(HLA)이 서로 일치해야 하는 등의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진단 시점에 이미 혈액세포들이 거의 없어서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재생불량성빈혈이지만 이식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거나 적합한 기증자가 없을 경우애는 바로 면역억제용 혈청주사와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는 치료를 선택한다. 지난 3년 동안 이러한 면역억제 치료를 받은 3명의 환자들이 지금은 모두 건강하게 정상인으로 살고 있다. 급성백혈병으로 처음 진단되면 바로 표준항암화학치료를 받게 된다. 표준항암치료를 하고나면 백혈병과 관련된 대부분의 증세들이 모두 없어져서 일단 건강해보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다가오는 재발을 완전히 피하기가 어려워 재발을 막기 위한 후속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표준항암치료 후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백혈병세포들까지 제거하기 위해서 고용량의 항암제와 온몸에 방사선을 쪼이는 치료(전신방사선조사)를 한 다음 바로 기증받은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들을 이식한다. 이러한 이식이 심각한 부작용들을 자주 동반하기 때문에 염색체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재발의 가능성이 적은 환자들을 미리 가려내어 불필요한 이식을 가능한 줄이려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골수이형성증 역시 아주 심각한 병세를 갖고 있는 경우 이식의 조건들이 충분히 갖추어지면 이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제주한라병원에서 혈액질환 환자들을 진료해 온지 벌써 3년이다. 난치성 조혈모세포질환을 진단하는 골수검사의 건수가 소아과 환자들이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매년 약 50-60건이었고, 이중 절반이 처음 진단된 환자들이었다. 인구가 약 60만 명인 제주에서의 실제 발생률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제주한라병원은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한 전문 무균병동과 전신방사선조사 장비, 조혈모세포의 분석과 처리를 위한 특수시설과 장비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한 이식에 관련된 전문과목 의사들과 숙련된 전문 간호사들은 물론 병원의 여러 지원 부서들이 한 팀을 이루어 진료에 임하고 있다. 수년전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이식을 처음 시작한 이래 작년에는 비교적 흔한 혈액암인 다발성골수종 환자에게 환자자신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자가이식치료를 시행하였으며, 환자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현재 또 다른 다발성골수종 환자가 조만간 자가이식을 받기 위해 준비단계에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대단수의 환자들이 제주가 아닌 서울로 가서 항암치료와 이식을 받고 있다. 치료를 받기위해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녀야 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어떤 지역보다 제주야말로 난치성 조혈모세포질환 환자들을 위한 항암치료와 면역억제치료 그리고 조혈모세포이식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끝으로 이러한 진료가 제주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역사회와 함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별히 젊고 열정적인 혈액종양전공 의사들의 동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한치화․혈액종양내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