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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통증, 중추신경계 변형 뇌일부 손상 초래
작성일 2016.08.29
조회수 595
장기간 통증, 중추신경계 변형 뇌일부 손상 초래
통증의 역사 -멜러니 선스트럼의 ‘통증 연대기’(pain chronicle)-


대부분의 의사들은 만성통증의 여러 측면들 중에서 의학적 측면, 그것도 미완성된 이론들에 불과한 짧은 지식들에 의존하여 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매우 어려움이 많으며, 치료 효과 또한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누구는 좋아지는데 나는 계속 아픈가? 팔자일까, 의사 탓일까, 치료법 때문일까?’
‘기도하면 통증이 줄어들까?’
‘왜 하필 내가 고통받아야 하나?’
‘진통제 말고 치료제를 주세요!’
‘통증은 백해무익한가?’
만성통증 환자들의 흔한 질문들이지만 이에 대한 답을 하기란 쉽지 않으며, ‘통증’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데, 역사적으로 통증에 대한 관점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근대이전의 통증관으로 통증은 결코 단순한 ‘몸의 경험’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와 은유로 가득한 영역’으로 여기는 것인데, ‘긍정적인 영적 변화를 일으키는 힘’으로 간주되기도 했었고, 기독교에서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로 통증이 시작되었다’는 예, 통증(pain)의 어원인 poena가 라틴어로 ‘처벌’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통증을 ‘참을 수 있는, 참아야 하는’것으로 여기는 것을 보면 이 관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두 번째 관점은 19세기이후 생물학적 통증관인데, 통증을 신경종말에서 뇌까지 전달되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감각으로 보는 것으로, 다윈의 영향을 받아 모든 통증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다고, 즉 조직 손상을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그림1>  따라서 질병이나 외상을 치료하면 통증은 저절로 낫는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은 20세기에 유행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환자 뿐 아니라 의사까지-이렇게 생각한다. 생물학적 통증관은 ‘급성’통증을 다스리는데 이바지하고 마취제 개발을 앞당겼지만, ‘만성’통증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요 근래 등장한 제3의 새로운 통증관은 앞의 두 관점을 버무렸다. 현대적 통증 모델에서는 뇌의 여러 부분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여 통증이 생긴다고 보며, 19세기 통증관과 마찬가지로 과학 연구를 토대로 삼지만 근대 이전의 비과학적 모델에 담긴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통증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순한 신경 작용이 아니라 뇌의 의미 생성 부위에서 만들어낸 경험이기 때문이다.
멜러니 선스트럼(Melanie Thernstrom)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각 중 하나인 통증을 철학․종교․문학․역사․의학․신경과학을 넘나들며 다층적으로 탐사하고 있다. 의사가 아닌 저술가인 저자는 ‘목디스크’와 ‘회전근개 충돌증후군’으로 진단받은 만성통증 환자이다. 자신이 앓고 있는 고통에 대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청탁받은 통증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미국 전역의 저명한 통증전문의 수십명의 진료실을 참관하면서 수백명의 만성통증환자를 수년간 관찰하고 인터뷰했다. 또한, 자신의 통증을 일기 형식으로 보여 주면서, 통증과 삶 자체와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저자는 통증을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와 치료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통증 자체의 특성 때문임을 인정하면서도, 통증에 대해 무지한 의사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만성 통증의 경우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장기간의 통증 자체가 중추신경계를 변형시켜 뇌와 척수에 병리학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 때문에 통증이 심해지며, 뇌 일부가 실제로 손상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원인이 무엇이든 ‘통증 자체가 병’이므로 ‘기다려보자’는 식의 태도는 매우 위험할 수 있는데도, 상당수의 환자 및 의사는 ‘진통제는 치료제가 아니’라며 진통제-특히, 마약성 진통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뉴로매트릭스(neuromatrix) 및 신경지문(neurosignature)등의 최신 연구 성과는 ‘왜 나만 이렇게 아픈가’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그림2>을 이용한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며, 플라시보 효과가 생기는 기전을 보여주고, 환자의 마음을-마음으로, 마음을 위해서-치료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만성통증’도 언젠가는 ‘결핵’처럼 완치될 길이 열릴 것이다.
저자는 의사가 아니며, 이 책에서-저자 자신도 10년 이상의 통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만성통증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증에 대해서 의사들이 얘기해줄 수 없는-몰라서이거나, 진료형편상이거나 간에-다양한 측면의 접근과 치료, 이해 방식들을 수천년전의 고고학적인 유물에서부터 최신의 연구논문까지 참고해 가며 환자의 입장에서 냉소적으로, 치우침이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어 만성통증 환자 뿐 아니라, 의사들도 느끼는 바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이호형․정형외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