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유용하지만 오남용하면 독될 수 있어
‘원숭이 마을에 신발장수가 나타났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신발들을 보여주며, 원숭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습니다. 신발을 신어본 원숭이들은 발도 아프지 않고 예쁘기까지 한 신발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발장수는 가끔 나타나 원숭이들의 낡은 신발을 새 신발로 바꿔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발장수가 갑자기 이제부터 신발을 가져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들은 신발장수의 말에 화가 났지만, 이미 발바닥의 굳은 살도 거의 없어진 터라 신발 없이 맨발로 땅을 밟기란 너무 힘들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원숭이들은 신발장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신발을 사야만 했습니다.’
얼굴이 붓고 피부가 얇아지고 멍이 잘 들고 통 기운이 없으면서 입맛도 없고, 심하면 배도 아프고 토하기도 하는 증상을 호소하며 외래를 찾는 환자분들이 계십니다 여쭤보면 관절통으로 아플 때마다 무분별하게 관절강 내 주사 치료를 받았거나 처방전 없이 관절에 좋다는 약 (스테로이드)이나 한약을 구해서 드셨다고 하며, 주사를 맞은 직후에는 몸 컨디션이 좋았는데 약기운이 떨어지면 시름시름 기운이 없어지고 입맛도 떨어졌다고 하십니다. 마치 위 동화 속 원숭이처럼 발바닥의 굳은살이 없어져 신발 없이는 맨발로 땅을 밝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스테로이드는 대단히 유용한 약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염증의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항염 작용과 면역 억제 작용을 가지고 있어 류마티스 관절염,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와 같은 교원성 질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과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 그 외 다양한 피부 질환, 기타 안과, 위장관, 혈액 및 신경계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암에 수반된 고칼슘혈증의 치료와 항암치료 시 동반되는 구토증상의 완화에도 사용되는 등 그 사용 범위가 우리 몸 어느 한 군데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유용한 약물일수록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월상안 (얼굴이 달덩이처럼 둥글게 변함), 당뇨병, 월경 이상, 감염, 식욕 항진, 소화성 궤양, 골다공증, 근육 소실, 대퇴골 무혈성 괴사, 척추 압박 골절, 혈압상승, 전해질 이상 (저칼륭혈증, 나트륨 저류), 체액 저류, 다행감, 정신 이상, 얇고 연약한 피부, 자반, 점상 및 반상 출혈, 녹내장, 백내장, 그리고 속발성 부신피질 기능부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스테로이드 제제는 생체 내에서 만들어내는 코르티솔이라는 부신피질 호르몬과 비슷한 성분인데 치료효과를 위해 고용량을 투여하는 경우 신채 내에서 호르몬이 많은 것으로 인지하여 생산을 중지 또는 감소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속발성 부신피질 기능부전이라 합니다.
코르티솔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며, 특히 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몸을 외부의 해로운 자극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장기간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하여 부신의 기능이 억제되어있는 경우에 감염, 외상 수술 등 심한 신체적 스트레스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코르티솔 분비를 충분히 늘리지 못하므로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이런 상태를 부신 위기라 하며 구역과 구토가 심해지고 탈수, 복통, 저혈압, 발열, 쇼크, 의식 장애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는 응급 상황이며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제제를 투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부신피질 기능부전의 진단은 부신피질 기능의 예비기능을 평가하는 자극검사를 시행하여 진단하게 됩니다. 부신피질 자극호르몬을 주사하여 자극을 주고 부신피질 호르몬 분비가 얼마나 증가하는가를 보는 검사를 통해 확인하게 되며, 그 결과에 따라 부신피질 기능부전이 확인될 경우 생리적 용량의 호르몬 보충 요법을 계속하고, 외상, 수술, 심한 스트레스 등의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호르몬 보충량을 늘려야 합니다.
생리적 용량의 호르몬 보충을 중단 가능한 시기는 수주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향후 추가적인 스테로이드 제제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강선미•내분비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