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증상 없이 얼굴만 노랗게 변할 때는 의심
- 담도암-
약 1년 정도 되었을까? 고등학교 교사이신 40대 중반 환자가 진료실을 노크했다. 다소 고지식한 모습,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자존심 강한 인상이었다.
“주변에서 얼굴이 좀 노랗다고 해서 왔어요. 다른 증상은 없습니다.”
환자를 살펴보다가 아뿔싸,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환자는 이미 공막 황달이 저명하게 와 있었다.
담도암이란 담도에 생기는 암을 말한다. 담도란 쓸개와 간 혹은 쓸개와 장을 이어주는 길을 일컫는 것으로 담즙이 배출되는 통로이다. 담즙은 주로 배출 작용을 하는데 간이 해독시킨 약물, 빌리루빈, 담즙산염, 콜레스테롤, 인지질 등을 십이지장에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지방의 소화,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 촉진, 장운동 촉진 작용 등을 가지고 있다. 담도와 쓸개를 합쳐 담관계라고 부르며 담도는 또 다시 간 내 담도와 간 외 담도로 나누어지고 간 외 담도는 다시 간문부와 원위부로 분류된다.
담도암은 간 외, 간 내를 포함한 담도의 어느 곳에서도 발생 가능한데 전체 암의 약 1.5%, 전체 소화기 암의 약 5%를 차지하고 있고 서구보다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에서 비교적 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담도암은 담도 결석의 경우와는 달리 복통이나 발열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초기 발견이 어려운 편이다. 그나마 간 외 담도암은 황달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간 내 담도암은 그마저도 없어 뚜렷한 징후 없이 체중 감소나 검진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담도암의 원인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담도 내 기생충 감염, 담도 내 결석, 담관계 선천성 기형, 서양에서는 만성 궤양성 대장염이나 경화성 담관염이 위험인자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B형 내지 C형 간염, 당뇨, 대사성 증후군이 관련이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는데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따르면 낮은 경제/생활 수준, 치매나 중풍같이 활동 능력이 떨어져 있는 만성 질환자들, 고혈압 등이 위의 요인 외에 추가적인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정되고 있다.
그간 많은 의학자들에 의해 담도암의 조기 발견을 위한 노력이 있었는데 가장 잘 알려진 종양표지자인 CA 19-9 및 CEA를 통해 무증상 담도암 환자를 찾아내기 위한 스크리닝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CA 19-9가 높은 수진자들 가운데, 0.5% 이내에서 실제 종양환자가 있어 결과적으로는 스크리닝의 역할은 부족하다고 밝혀졌으며 다른 조기발견을 위한 검사도 현재로서는 전무한 상태이다. 담도암의 진단은 대부분 CT(전산화 단층 촬영)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만일 종양이 일정 형태의 혹을 형성하지 않고 측면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으면 CT상에서 뚜렷이 보이지 않을 수 있어 필요시 MRCP(자기 공명 영상)이나 ERCP(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을 시행해야 한다. 확진은 ERCP를 통한 조직검사나, 간 내 담도암의 경우에는 세침흡인 검사 등을 시행하여 이루어지는데, ERCP를 통한 조직검사는 실제 시야에서 이루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확률(yield)이 20~40%로 낮고 따라서 임상적 판단이나 추가적인 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 등이 진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료는 다소 비관적인데 현재로서는 생존율이 입증된 유일한 치료는 수술 외에는 없다. 진단 당시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40-50%에 못 미치고 있는데 진행성 담도암인 경우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등을 해 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생존율을 높인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간이식 및 경동맥 화학색전요법도 모두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는 실패했는데, 최근에 광역동치료 (photodynamic therapy)가 비교적 치료성적이 우수하다고 보고되어 향후 치료 대안으로 기대를 해 볼만 하다.
치료를 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로는 환자의 병기가 어느 정도인가, 환자의 기능수행 상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심폐 질환을 포함한 기저질환은 어떠한가 등이 있다. 의료진이나 환자나 보호자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으로 나이가 많으면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결과가 안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인데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나이 자체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이 더 중요하며 고령이라고 하더라도 기저질환이 없고 기능수행 상태가 양호하면 적극적인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사분은 안타깝게도 검사결과 수술이 불가능한 담도암 상태로 판정을 받았다. 서울에 대학병원으로 옮기신 이후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긴 상태이다.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도 수술을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당시 사진을 같이 보신 선배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나 빠른 발견이 아닐까?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내 눈이나 얼굴이 노랗다면 한번쯤 진료실을 노크해보자. 빠른 의심은 좋은 치료 결과의 지름길이다. <소화기내과과장 이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