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환경적 다양성 감안해 개인에 맞는 질병 관리
맞춤형 정밀의학
‘정밀공학’이라는 말은 들어봤는데요. ‘정밀의학’? 대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병원을 방문하면 누구나 예외 없이 의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의사는 오감을 이용-시진, 청진, 촉진, 타진-해서 환자를 진료하고 진단을 합니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넓고 깊은 논리적 결정과정이 작용합니다. 나이와 몸무게부터 시작해서 증상, 진찰소견, 건강상태, 검사결과, 위험인자, 가족력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자료를 로직(logic)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 번 더 복잡한 결정과정을 통해 그 환자에게 가장 맞는 처방-조언, 약물, 시술, 수술-을 내리게 됩니다. 그 환자가 기존에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 의사는 더 세심하게 두뇌를 가동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로 인해 환자와 의사 모두 당혹하게 되기도 합니다. 처방된 약물이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환자가 복용한 약물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흡수, 대사, 배설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약물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약물을 대사하는 효소와 운반하는 단백질-의 차이와 장내 미생물의 대사 작용과 효소활성의 차이에 의해서 같은 약물을 복용해도 사람에 따라 약물 효능(부작용)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진단법과 치료법은 다년간의 보건학적 연구(통계)를 통해 표준화된 지침(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러한 표준 지침(진단과 치료)에 따라 모든 환자를 진료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개개인 모두의 특성이 고려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같은 진단명에 대해서는 같은 약물의 처방이 이루어지고, 그러다보니 어떤 환자에서는 원하는 치료효과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환자에서는 너무 과한 효과(부작용)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약 18년 전의 연구이기는 하지만 표준적인 약물치료를 할 경우 질병에 따라 25%~80%의 환자에만 효과를 보인다는 보고(Brian B. Spear et al., Clinical application of pharmacogenetics, TRENDS in Molecular Medicine, 2001, 7(5), p201-204)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예방법과 치료법을 맞춰 처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부 아는 사람만 아는 내용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3년에 휴먼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된 이후로 유전체 분석 기술(염기서열 분석)과 전산기술(유전정보 분석, 저장, 처리)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유전정보(DNA의 염기서열 30억개)를 분석하는데 13년(약 27억 달러)의 에너지가 필요했다면 현재는 2일(약 1,000달러) 만에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유전자의 차이가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한 개인이 처한 환경에 의해서도 질병 발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유전적, 환경적 다양성을 감안하여 개개인에게 맞게 질병의 관리(예방, 치료)를 하려는 움직임이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밀의학이란 개개인의 건강정보(환경, 유전, 생활습관, 질병정보, 생물학적 특성 등)를 토대로 개별화된 질병 발생위험도를 예측 및 예방하고, 특정 질병이 발생했을 때는 이에 대한 맞춤형 치료를 시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건강관리 패러다임(paradigm)입니다. 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단, 맞춤형 예방과 치료를 적용하기 때문에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질병의 발병률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비중(比重)을 달리해서 작용하는 질병의 원인(생활습관, 생활환경, 유전)을 분석한 후에 예방하고 치료하는 과정에 사용하는 것을 맞춤형 정밀의학이라고 한다면, 유전체 검사와 장내 미생물 검사는 이러한 미래형 의학의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체 검사는 질병의 발생원인 중에 개인의 타고난 유전적 체질을 미리 볼 수 있는 것이고, 장내 미생물 검사는 환경 변수(생활습관, 생활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유전체를 분석함으로써 자신에게 취약한 질병이 무엇이고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효능이 높고 부작용이 적은 약물은 무엇인지 제시받게 됩니다. 장내 미생물 분석은 개인별 장내 미생물 현황을 분석해서 현재 자신에게 맞는 생활습관(식사, 운동, 스트레스)을 추천받고 건강관리를 함으로써 질병에 대처하게 됩니다.
유전체 검사와 장내 미생물 검사는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질병 예방, 부작용 예방-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를 분석한 후에 질병 예방을 위한 맞춤형 예방-발생위험도가 높은 질병에 대한 건강증진과 건강검진 관리-을 받게 되고, 특정 질병이 생겼을 때는 맞춤형 치료를 받게 됩니다. 유전적 특성과 약물대사에 관여하는 장내 미생물의 역할을 고려한 약물처방이기에 치료 효과는 높고 부작용은 최소화되는 것입니다. 기성복보다 맞춰 입은 옷이 내 몸에 가장 잘 맞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의 차이를 고려한 맞춤 처방이 가장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이를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진료실에서 맞춤형 정밀의학을 만나기 위해서는 근거중심의 의학으로 거듭나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객관적이고 충분한 자료(통계)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많은 연구-질병관련 유전자, ※오믹스(Omics)와 환경/생활습관과의 관련성, 질병 위험요인과 질병 발생, 한국인의 연령별 정상 장내 미생물 조성,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과 질병의 연관성 등-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빨리’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정밀의학’이 우리 곁에 다가올 것입니다. 앞으로 ‘정밀의학’이 가져다 줄 건강한 미래를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오믹스(Omics); 유전체(Genomics), 전사체(Transcriptomics), 단백체(Proteomics), 대사체(Metabolomics), 군유전체(Metagenomics)
<진단검사의학과 김동렬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