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통합검색 검색 아이콘
전체메뉴

건강 상식

내가 먹는 약이 효과 있을까요?
작성일 2019.12.03
조회수 141

내가 먹는 약이 효과 있을까요?

 

 

 

경상북도 소재 작은 마을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화입니다. “아이고. 선상님. 선상님이 준 약을 묵고 무르팍이 나샀어요. 그리고 속 쓰리던 것까지 좋아졌어요. 고맙심데이. 선상님”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할머니가 내민 거친 두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약을 처방해 드렸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오랜 육체노동으로 생긴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이 의심되어 소염진통제 1알, 근이완제 1알, 그리고 위산분비억제제 1알 이렇게 세알을 색색깔로 처방해 드렸습니다.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기 이전이라 의사가 처방한 약을 병원에서 직접 조제하던 시절입니다) 물론 무척 한가한 보건지소 의사였기에 할머니와 함께 도시에 있는 자녀들 이야기도 하고 무릎도 만져드리면서, “쪼그려 앉아서 일하시면 안 돼요”라는 처방전도 드렸지요. 그리고 진료실 문을 나서는 할머니를 향해 “할머니~ 위장약도 좋은 것으로 넣어 드렸으니 약 잘 드셔야 돼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또는 위약 효과(僞藥效果)라는 말이 있습니다. 환자가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는 가짜 약(설탕, 증류수, 식염수 등)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환자의 병세가 호전이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환자의 믿음이 실제 좋은 효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말도 있습니다. 올바른 치료제를 처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이를 신뢰하지 않게 되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치료이던지 환자가 불신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지요.  

 

1957년 독일의 심리학자인 브루노 클로퍼는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에 대해 보고를 합니다(Bruno Klopfer. Psychological Variables in Human Cancer, Journal of Projective Techniques). 온몸에 암이 퍼져 죽음의 벼랑 끝에 선 림프육종 환자가 있었습니다. 새로 개발된 약(Krebiozen)에 대한 소식을 접한 그는 주치의에게 간청을 하게 되고 결국 의사의 묵인 하에 주사를 맞게 되는데요. 며칠 후 주치의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환자가 병실을 걸으면서 간호사와 농담을 할 정도로 호전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림프육종의 크기도 줄어들고, 2주 동안 더 주사를 맞은 후에는 큰 호전을 보여 퇴원을 하게 됩니다. 

 

집에서 잘 지내던 환자는 Krebiozen의 효과를 의심하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러자 곧 그의 병세는 악화가 되었고 림프육종이 재발하게 됩니다. 곧바로 주치의는 ‘기존 약보다 더 약효가 보강된 최신 버전의 Krebiozen을 사용할 수 있다’고 환자에게 말하면서 환자에게 주사치료를 다시 시작합니다. 의사가 실제로 주사한 약은 증류수였다는 사실을 환자에게는 모르게 한 채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주 놀라운 위약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주사를 맞은 며칠 후에 환자는 퇴원을 하게 되고 두 달 동안 암에 대한 증상 없이 잘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에 미국의사협회에서는 ‘Krebiozen은 효과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그 후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가 되고 결국 2일 후에 사망하게 됩니다.      

 

플라시보 효과가 정확히 어떤 기전에 의해 일어나는지는 아직도 난제(難題)입니다. 하지만 심리상태, 감정반응, 자아인식을 주관하는 특정 대뇌 부위의 활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엔돌핀,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신경생리 반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자에게 나타나는 플라시보 효과는 의사에게서부터 먼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 자신이 내린 처방(처방하는 약물)에 대해 얼마나 확신(신뢰)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심장전문의인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은 협심증 약물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의사가 약물을 얼마나 신뢰하고 처방하느냐에 따라 환자에게 나타나는 치료효과에 차이가 있음을 보고하였습니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주치의에게서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 또한 질병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기 마련일 것입니다. 결국 이는 환자-주치의 간의 관계 형성(rapport)이 플라시보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의 더 많은 부분은 환자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환자 자신이 치료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더 큰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2008년 항우울제를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Susan Mayor, BMJ, 2008; 336(7642): 466)에서 4가지 항우울제 치료제에 효과가 나타난 환자의 81%는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또한 암 치료를 받는 소아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Philip A. Pizzo, et. al, The Journal of Pediatrics, 1983; 102(1): 125-133)에서는, 처방 약이 항생제이던지 가짜 약이던지 관계없이, 의사에게 처방받은 대로 약물을 잘 복용한 환자가 더 건강했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는 자신에게 처방된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소망, 희망, 기대, 믿음)를 부여하는 것이 플라시보라는 효과를 나타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거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 질환일수록 플라시보 효과는 더 잘 나타납니다. 그러나 위약 효과를 이용한 약물의 투여는 현재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의사와 환자 간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신뢰를 깨뜨릴 수 있고, 환자가 위약이 처방된 사실을 알았을 때 환자의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 모두가 플라시보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생각)의 차이가 좋은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약을 드셔야 한다면 축복하며 드시는 것은 어떨까요? 

 

 

 

 

<진단검사의학과 김동렬 과장> 

 

이전글
2020.02.10
다음글
201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