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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론 왜곡을 앞세운 상급종합병원 논의, 제주 의료를 위태롭게 한다.
작성일 2025.12.26
조회수 14

여론 왜곡을 앞세운 상급종합병원 논의제주 의료를 위태롭게 한다.

 

 

  최근 제주 지역에서 특정 의료기관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주장하며 여론조사 결과를 전면에 내세우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제주 의료의 미래를 책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여론을 동원해 정책 결정을 압박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밖에 없으며 공공의료의 원칙과 상급종합병원 제도의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단순한 명칭 부여가 아니다. 의료전달체계의 최상위 기관으로서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를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를 엄격히 평가해 국가가 부여하는 공적 지위다. 보건복지부에서 중증환자 진료 비율, 필수 진료과 운영 실적, 전문의 인력 수준, 의료 질 관리 지표, 응급 및 중증의료 대응 체계, 지역 의료기관과의 역할 분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여론은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의료기관이 임의의 여론조사를 앞세워 상급종합병원 지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다. 상급종합병원은 주민 선호나 상징성에 의해 결정되는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중증환자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 여론조사를 근거로 제도를 압박하는 순간, 상급종합병원은 공공의료 인프라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경쟁의 결과물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특정 의료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공정성이다. 조사 대상의 구성과 대표성, 표본 규모, 질문 문항의 중립성, 조사 설계와 결과 해석 과정에 대한 충분한 공개와 검증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특히 특정 병원의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전제로 하는 질문은 응답자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사 방식은 객관적인 민의 수렴이 아니라 정책 홍보에 가깝다.

  정작 상급종합병원 지정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 실제로 중증·응급 환자 진료 공백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기존 의료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의료전달체계 전반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은 충분하지 않다. 특정 의료기관의 필요성과 당위성만이 강조될 뿐, 제주 의료 전체의 균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공공의료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균형의 문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특정 의료기관이 희망하는 바를 해결해 주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주 도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응급의료·중증의료 등을 누가 가장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이는 감정이나 여론이 아니라, 데이터와 실적,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여론은 정책 결정의 참고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왜곡된 여론조사나 이미지 경쟁의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제주 도민에게 돌아갈 것이며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논의는 여론이 아닌 제도로, 주장보다 기준으로, 홍보가 아닌 실적으로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공공의료를 지키는 최소한의 원칙이며, 제주 의료의 미래를 책임지는 유일한 길이다.



한라의료재단 김상훈 기획관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