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균이 우리 대장에서 사라지면
세균과 우리 몸의 장수나 건강과의 관련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생물학자인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입니다. 그는 식세포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1903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로 말년에는 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불가리아 사람들이 장수하는 사실을 알고 그 비결이 그들이 자주 마시는 우유발효음료인 요구르트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는 요구르트에 들어있던 락토바실러스 불가리쿠스라는 유산균을 배양해 자주 마셨습니다. 한국도 현재 많은 유산균 음료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데 그 시작은 1960년대 말 건국대학교 축산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윤쾌병 교수의 일본방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시로타미노루 박사에 의해 개발된 특수 유산균을 이용하여 제조한 야쿠르트가 인기리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일본에서 한국야쿠르트사에 의해 종균이 수입되어 보급되게 되었습니다.
장내 세균들은 우리가 만들지는 못하지만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을 만들어 줍니다. 비타민 B1, B2, B6, B12 등이 대표적입니다. 탄수화물이나・지방 등 여러 영양분의 흡수도 장내 세균의 도움을 받는데 인간은 스스로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내 세균이 음식 중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으며 세균의 효소를 이용하면 좀 더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의학잡지를 통해 보고되는 논문을 보면 장에 존재하는 세균이 다양한 질환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단순히 건강음료 차원을 넘어 의학적 치료에 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사실 장내에는 존재하지만 체외에서는 배양이 까다로워 존재를 알 수 없는 균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전자 검사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해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연구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2012년 6월 의학잡지인 Nature지에 의학역사상 획기적인 연구발표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Human Microbiome Project (HMP) 컨소시엄이 약 2,000억 원을 투자하여 연구한 결과로 우리 몸의 세균 수는 적어도 우리 몸의 세포수인 100조 개보다 10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세균이 사는 곳이 바로 대장이며 대장엔 균의 수도 많지만 그 종류도 4000종 이상의 다양한 미생물들이 존재한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또한, 대장에 어떤 종의 세균이 우위를 이루고 번식하는가는 개인마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섭취하는 음식물과 건강 상태와 나이 등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에서 천식, 크론병, 류머티스 질환, 심지어 대사증후군까지도 체내 미생물 분포와 관계가 깊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대사증후군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대장내 세균의 조성이 바뀌어 락토바실러스 같은 유익한 균의 비율이 떨어지고 오실리박터 같은 유해한 균의 비율이 늘어나면 대장의 투과성이 커지고 내장지방의 염증이 일어나 결국 인슐린 감수성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미네소타대학병원의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는데 위막성 대장염에 관한 것입니다. 세파계나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오래 쓰다 보면 장내에 클로스트로디움이라는 유해 세균이 자라 심한 설사를 일으키는데 대개 메트로니다졸이란 항생제로 치료가 됩니다. 그러나 이 항생제로도 조절이 안 되는 여자환자가 있었는데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남편의 대변을 식염수에 풀어 환자의 대장에 넣어주었더니 치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진은 과연 남편 대변에 있는 어떠한 세균이 이러한 효과를 내었는지 추가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익한 세균을 이용한 새로운 요법이 아직은 초기단계라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기술발전과 더불어 머지않아 표준요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진단검사의학과 과장 김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