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이후
골든아워 위기 넘겼지만 치료·회복 과정에서 사망하는 경우 많아
중환자실 입원 및 인공호흡기 착용 기간 길수록 합병증 발생 높아
중환자 세부 전문의 제도 도입했으나 아직은 일부 대형병원 국한.
흔히 외상환자의 소생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골든타임 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보다 정확한 용어는 골든아워(Golden hour)로 외상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보통 1시간 이내)을 의미합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여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덕분인지 골든아워에 대한 비의료인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고 이는 중증외상환자의 소생에 분명한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의 소생은 골든아워만 지켜지면 끝나는 것일까요?
외상학에서 이야기하는 사망의 삼원분포(trimodal distribution of death)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프에서 나오는 첫번째 빨간선은 사고즉시 사망(현장사망)을 뜻합니다. 외상사망환자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며 주로 뇌, 척수, 심장, 대동맥의 치명적인 외상으로 사고의 예방 이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두번째 주황선은 조기사망 환자군으로 첫번째보다 덜 치명적인, 하지만 여전히 치명적인 손상들로, 방치될 경우 대부분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는 환자들입니다. 우리가 골든아워 안에 소생을 시켜야하는 환자들이며 그 드라마틱한 시간과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TV 쇼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프에 회색으로 표시된 또 다른 선이 보입니다. 이들은 후기사망 환자군으로 골든아워를 넘겼지만 이후 회복과정 혹은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폐혈증,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사망하게되는 환자들로 그 시기는 대략적으로 수상 시점으로부터 약 1-2주 또는 그 이후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은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중환자실 이라고 하면 대부분 떠오르는 생각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경을 헤매는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있는 곳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부의 환자는 뇌 손상이 동반되어 의식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다수의 환자는 자발호흡이 적절하지 않아 인공호흡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 및 다른 치료의 유지를 위하여 약물로 잠들게하는 경우입니다. 기존의 중환자치료는 이러한 환자들이 인공호흡기를 떼고 충분한 자발호흡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의학 연구들에 따르면 중환자실 재실기간과 인공호흡기의 유지 기간이 길수록 폐렴, 폐혈증 등의 합병증 및 이와 관련된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중환자의학회(Society of critical care medicine)에서는 약물 진정중인 중환자실 재원 환자들을 매일 약물을 끊고 의식을 회복시키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되며 이 밖에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적용중인 환자에서 조차도 조기의 활동이 중환자실 재원 기간 및 인공호흡기 유지 기간을 줄여주어 합병증 및 사망률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가이드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치료의 과정에서는 산소공급이 끊어지거나 생체활력징후가 불안정해지는 등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환자의 전문적인 처치가 가능한 의료진이 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외래 진료도 해야하고 수술도 해야하는 주치의가 중환자실에서 상주하며 이와 같은 과정을 모두 지휘 감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서구권에서는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병원이 많습니다.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는 중환자의학 진료영역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의로 타 분야 전문의 및 보조 인력과의 협동진료를 통하여 중환자들의 치료성적을 개선하고 중환자들의 안전과 인격보호를 신장 할 수 있는 의사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처음으로 대한중환자의학회가 발족하고 2001년 대한의학회 및 세계중환자의학회에 가입되었으나 중환자 세부전문의 제도는 2008년에서야 처음 시행되었고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중환자실에 배치하여 실질적인 진료에 활용하는 병원은 일부 대형대학병원에 국한될 만큼 아직은 더 발전해 나가야 할 분야입니다. 우리 제주한라병원 권역외상센터는 현재 1명의 외상중환자실 전담전문의가 근무 중이며 내년부터는 중환자세부전문의 수련병원지정이 예정되어 추가적인 중환자실 전담전문의 양성 및 근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는 골든아워 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고 소생한 중증외상환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나 외상 후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고 퇴원 후 겪을 수 있는 장애를 최소화하여 가정으로 또, 사회로 복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박정윤 외상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