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복용 잘 하기
하루 몇 회, 언제 복용하는 것이 좋은 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복용약 많으면 약제간 충돌 우려 있어 전문의와 상담 바람직
어릴 적, 코 묻은 동전 몇 푼으로 참 갖고 싶은 것도 많던 내가 마음껏 쇼핑할 수 있는 바자회의 풍경이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른다. 아직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 않고 나눠 쓰자는 바자회의 모습은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없지만, 그 정신은 당근마켓 등 현대화된 형태로 아주 잘 전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우리는 자원과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이른바 '아나바다'를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아나바다'라면, 약을 잘 복용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의 약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치료제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과연 나는 약을 잘 복용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든다면 오늘부터 '알다보다'를 실천해보자. 약을 알맞은 시간에, 다 복용하며, 보관을 적절히 하고, 다시 전문가에게 확인받으며 사용한다면 약의 효과를 십분 활용하여 한층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알맞은 시간 - 약을 제때 복용하는 것은 아주 귀찮은 일이다. 우리는 늘 규칙적으로 식사하지도 않고, 수면 패턴도 일정치 않다. 외출 시에 약 휴대를 잊을 수도 있고, 그냥 까먹기도 참 쉽다. 그렇지만 한평생 소홀하게 대했던 내 몸에게 이제라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적절한 시간에 약을 복용하는 것이 1순위 실천 사항이다. 일례로 병원에서 처방받는 위장약 중 PPI계열의 약은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에 의해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는 약으로, 식전에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먹는 해열제 시럽도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복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주로 저녁에 처방되는 일부 알러지 약의 경우 졸음을 유발해 낮 시간에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처럼 수많은 약들이 다양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내가 먹는 약이 언제 먹는 것이 좋은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다 복용하기 - 환자분들과 복약 상담을 하다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이걸 다 먹어야 하는가' 또는 '증상이 호전되면 먹지 않아도 되는가'이다. 이것은 내가 처방받은 약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다른데, 변비약이나 기침약 등의 약은 물론 증상이 없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으나 보통 처방받는 전문 약품은 처방 일수대로 다 챙겨먹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균을 잡는 목적으로 나오는 항생제의 경우, 불규칙적으로 먹다 안먹다 하는 것이 효과를 급감시키기 때문에 처방 일수, 하루 복용 횟수를 잘 지켜 먹는 것이 중요하다. 혈전 약 또한 불규칙하게 복용할 경우 혈관 질환이 재발할 수 있으므로 처방대로 성실히 복용해야 한다. 또 어르신들께서 관절염으로 많이들 파스와 먹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데, 파스만 붙이고 먹는 약은 복용을 잘 안하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절염 등에서 소염진통제는 통증 완화 이외에도 질병 치료의 목적도 있기 때문에 조제된 대로 먹는 것이 필요하다.
보관을 적절히 - 수많은 약제들이 보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유효기간과 안정성에 큰 변화가 생긴다. 주로 은박지 시트로 포장되어 눌러서 한 알씩 까먹는 PTP 알약들의 경우 흡습성이 높거나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약제들을 미리 한꺼번에 까두고 보관하는 것은 효과를 떨어트릴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처방받는 항생제 시럽 등의 약품도 냉장고에 적절히 보관되지 않으면 변색되며 효과가 사라지고, 협심증에 먹는 진통제인 니트로글리세린 등의 약품들은 차광백에 보관되어야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외용제는 개봉할 경우 유효기간이 짧아진다. 예시로 안약은 개봉 후 1달, 연고는 개봉 후 6개월간 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약품들은 개봉할 때 개봉일을 용기에 기재해주는 것이 좋다. 보관을 적절히 하지 않은 약품들은 주로 효과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복용하여도 치료 효과를 내지 못할 수가 있다.
다시 전문가에게 상담하기 - 만성 질환자나 고령자의 경우, 먹는 약이 많아지고 부수적인 영양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경우 약제끼리 상호작용을 일으켜 원하는 효과를 방해하거나 이상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의료진에게 내가 현재 복용중인 약물 리스트를 보여주며 수시로 그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경과를 보고 약제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약제를 바꿔야 할 경우가 생기므로, 약을 복용하며 증상의 변화나 전에 없던 부작용을 느낀다면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제주한라병원 약제과에도 환자들의 약 문의가 자주 오는데, 이렇게 약 복용에 대한 궁금증을 전문가에게 상담하면 나의 약물치료에 심리적 안정감도 높아지고 복약 순응도도 좋아질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요즘의 우리는 늘상 약품과 함께한다. 똑같은 약을 먹어도 이 ‘알다보다’를 잘 지키는지에 따라 치료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2022년 새해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면 십중팔구 ‘나와 가족의 건강’을 빌었을 것 같다. 내가 처방받고 안 먹은 약이 집에 잔뜩 쌓여있다면, 또는 집안 어른들께서 약을 잘 챙겨드시지 않거나 잘못 복용하고 계시다면, 소원 성취를 위해 이제라도 한 번씩 요모조모 따져보도록 하자.
<약제과 하정빈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