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관련 유전자변이 물려받으면 발생률 높아져
암은 유전인가?
2005년 리니아 올슨(Linnea Olson)은 45세의 나이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자녀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치료를 받았던 걸까요? 그 당시에는 단어마저 생소했던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를 받았던 덕분입니다. 유전자 분석과 함께 생활습관, 식이요법, 환경적 요인 등을 체크하고 그에 따른 개인 맞춤형 처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미국은 2005년부터 ‘암 게놈 아틀라스(The Cancer Genome Atlas)’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암 환자들로부터 유전체(게놈; 한 생명체가 지닌 DNA 염기서열 전체), 전사체(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모든 RNA), 후성 유전체(주변 환경 요인 등으로 후천적으로 변한 유전체)에 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해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고자 한 것입니다. 암 발생의 원인을 이해하고 개인 맞춤형 항암 약물치료(표적치료제, 면역치료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암 유전체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암이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암의 경우에는 특정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암이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유전성 암으로는 유방암, 난소암, 대장암이 있는데요. 암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암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커집니다. 유방암을 예로 들자면, 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돌연변이가 없는 같은 나이의 여성에 비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7배가 증가되는 것입니다. (*BRCA 유전자는 DNA에 손상이 왔을 때 DNA를 복구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냅니다. BRCA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복구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되어 유방암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성 암과 관련되어 있는 원인 유전자를 분석하고 암 발생의 위험을 조기에 파악/대처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암 유전체 검사만 발달한다고 암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항암제의 계발 또한 동반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암환자 5년 생존율이 많이 증가한 것(1993년~1995년; 41.2% → 2009년~2013년; 69.4%)은 항암제의 발달이 한몫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세대 항암제인 화학항암제는 암세포와 같이 증식이 빠른 세포에 비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작용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상세포까지 공격을 하게 되어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2세대 표적항암제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드디어 유전자 검사를 이용하게 되는데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암세포만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부작용을 낮추고 치료 효과는 높이게 된 것입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러나 암세포가 약물에 내성을 가지게 되면 약물효과가 급격히 떨어지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최근에는 체내 면역 시스템을 자극하여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3세대 면역항암제가 힘을 내고 있습니다. 단일항체 약물과 T-세포 면역치료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개발되어 사용이 가능한 면역항암제/표적항암제의 수가 제한적이고, 건강보험급여가 모든 환자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어서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큰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정밀 의료’의 범위를 암 치료뿐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 녹내장, 신경퇴행성 질환으로까지 확대하려는 연구 및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유전체 진단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의 발달이 높은 치료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는 자신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BRCA1)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당시에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결국 유방 절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어머니와 이모들이 각각 난소암과 유방암으로 사망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그녀는 자궁절제술과 난소절제술까지 받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BRCA 유전자에 대해 검사하는 건수가 증가를 하였고, 최근 4년 사이에 예방적 유방 절제술이 5배나 증가하게 된 것이지요(한국 외과학회, 2016년).
강수 확률이 70%라는 일기예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리 우산을 준비하거나 야외 활동에 대한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만약 당신의 유전자 검사에서 특정 질병의 위험도가 70%라는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면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요. ‘아는 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약’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래에는 정밀의료·맞춤의료가 더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진단검사의학과 김동렬 과장>